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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고전영화] 아름다운 이별이야기, 8월의 크리스마스

by 따신남 2022.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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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Daum 영화

 

사진, 순간을 기록하는 한 장의 기록

 

8월의 크리스마스는 대부분 초원사진관을 비쳐준다. 사진관 밖의 모르는 인물들의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웃는 얼굴이다. 한석규가 찍어 준 심은하의 증명사진도 또한 웃는 얼굴이다. 웃는 얼굴은 마지막 사랑 고백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결코 고백할 수 없는 그와 그의 고백을 기다리는 그녀의 기다림. 한석규의 마지막 사랑은 그를 밝게 웃게 했던 그녀였다.

 

일상에서 느낀 삶과 죽음의 아름다움

불치병에 걸린 30대의 한석규(정원)는 변두리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한다. 그는 병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정원의 곁에는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역까지 맡아 반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신구)와 가끔씩 들리는 결혼한 동생 정숙(오지혜)이 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 듯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뜻밖의 만남이 찾아온다. 다림(심은하)이라는 아가씨이다. 그녀는 정원의 사진관 근처에서 주차단속을 한다. 8월의 무더운 여름날,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에 다녀온 날 정원은 지쳐있다. 주차 단속원 다림은 사진을 맡기러 온다. 하지만 잠시 뒤에 오면 안 되냐는 정원의 부탁을 들은 듯 만 듯 급하다며 작업을 재촉한다. 정원이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자 다림은 무안해져 필름을 두고 나간다. 사진관 밖으로 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다림이 보인다. 갑자기 미안해진 정원은 아이스크림을 사서 그녀에게 간다. 다림은 쑥스러워하며 아이스크림을 받는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등지고 나무 그늘 아래서 다림과 정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들의 처음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하며 진행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태양은 뜨고 진다.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 밝은 아침이 있다면 어두운 저녁이 있다. 그리고 생명은 태어나면 죽는다. 사람도 태어나면 죽는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반드시 죽는다. 이 영화는 이런 삶과 죽음을 살아가는 인물을 이야기한다. 여주인공 다림은 풋풋한 사회초년생인 20대를 연기한 심은하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30대를 연기한 한석규의 상반된 이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한석규가 연기한 시한부 인생의 캐릭터 정원은 내가 알고 있는 시한부의 모습이 아니다. 무겁고 슬픈 인생이 아니었다.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이 태연하고 의연한 인물이다. 그의 삶에서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너무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는 게 의아할 지경이다. 아마도 죽음을 항상 염두하고 살아가서 그런지 그의 인생은 시간의 흐름보다 더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의 미소에서는 슬픔이 없다. 그런 그에게 한 여성이 다가온다. 햇살처럼 순수하고 따뜻하고 밝은 그녀의 만남을 지속할수록 그는 이별의 순간만을 기억하고 있다.

 

 

가슴 아프고 아름다운 이별이야기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치매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리모컨 사용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는 아무리 들어도 또 기억을 하지 못하고 그걸 계속 반복하면서 자신의 삶이 끝나면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하면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큰 종이에 하나하나 마음을 담아 리모컨 사용법을 적어서 걸어둔다. 나는 이 장면에서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사랑, 떠나는 아들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 지금의 시간을 표현하는 한 장의 편지로 생각한다. 마음을 담아서 쓰고 또 쓰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 이 장면에서 두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맺히고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하고 아프기까지 했다. 그래서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해피앤딩은 아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로 주인공이 결혼하고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슬픔만 가득 기억되는 영화도 아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남자의  마지막 사랑이야기이다. 이별의 끝은 죽음이 아닌 한 장의 추억으로 간직하는 사진과 같은 정말 단순한 이야기가 이 영화라고 본다. 내가 기억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삶도 있다고 보여준다. 이 점이 오히려 나는 고맙다. 그래서 내가 생을 마감할 때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누군가가 날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주고 한 장의 사진으로 추억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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